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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上⼭ over there
장민승 jang minseung 張民承
Jeju - viaart 2024. 9. 28. ~ 11. 3.

산속의 그늘은 마치 연옥에 갇힌 자가 죄의 고통으로 인해 단테에게 부탁한 절실한 기도가 닿는 곳이다 그늘은 강한 햇빛으로부터 우리를 . 보호하며 어둠을 땅에 새긴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한 기도는 죽은 영혼을 위한 애도와 추모를 담는데, 이것은 그늘이 주는 안식과 같다. 나무의 지난 모습을 기억하는 그늘은 서늘한 어둠을 마주하며 인간이 끈질긴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사원이다. 과거의 국가 폭력에 의해 일어난 일 중 아직 규명되지 않고 애도조차 되지 않은 사건들은 연옥에 갇힌 채 고통으로 그늘져 있다. 장민승은 개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갖는 작업을 통해 과거를 회고한다. 설악산의 토왕성 폭포, 제주도의 한라산에서 애도를 위한 간절함을 자연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접근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에 대한 연작으로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이라는 이름을 아래로 두며 암산 줄기로 이어진 금강산과 설악산을 오른다. 전시 《상산》은 장민승의 〈오버데어〉 (2018), 〈입석부근〉(2016), 〈보이스리스〉(2014)의 프리퀄로, 앞서 말한 대로 그가 왜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지 그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작업의 시작부터 그가 왜 무성의 영상과 자연의 사진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한다.

2018년 개봉한 〈오버데어〉는 1,000일 동안 한라산의 설산을 오르내리며 제주 전역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일기예보에서 가장 궂은 날씨를 택하는 장민승 특유의 작업 방식은 거대한 자연의 재난 앞에 선 본인의 안전까지 소망하게 한다. 장민승이 위험을 감수하고 간절히 담아내고 싶은 드라마틱한 장면은 단순히 시각적 연출에 대한 작가의 욕망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이유에 대해 그는 산을 오가며 자연을 담아내는 것은 걷는 행위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산은 그에게 피안의 장소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장민승이 담은 제주 밤바다의 물결, 한라산의 바람과 물안개는 자연히 지나쳐버린 과거를 사유하고 추모하도록 이끈다. 장민승이 구상한 사원에서 관객은 시청각적인 감상을 통해 명상의 순간을 경험한다. 〈오버데어〉의 연작인 대형 사진 작업 〈프롬 오버데어〉는 그 찰나를 기록한 것으로, 지각적 추상을 이끈다.

바다와 관련된 작업 〈the moments 6’49”〉(2012), 〈수취인불명〉(2023), 〈over there somewhere everywhere〉(2021)은 자연에 대한 몰입을 통해 관객을 추상적 감상으로 이끈다. 2012년 태풍 볼라벤(Bolaven)으로 인해 풍랑주의보에 발이 묶인 해변에서 표류한 시간이 담긴 〈the moments 6’ 49”〉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은 마치 곧 쏟아질듯한 웅장한 파도와 부서진 백색의 미세한 파도 거품이 대비를 이루는 장면이다. 스펙터클한 자연과 더불어 숭고에 대한 몰입이 동반된다. 〈수취인불명〉은 해변의 모래 사이에 박힌 유리알을 근접 촬영한 신작 시리즈로, 물성의 표면이 마모된 결과보다 그 과정에 집중한다. 〈수취인불명〉과 〈over there somewhere everywhere〉은 자연과 시간의 광활한 스펙트럼 사이 작은 인간사에 대한 장민승의 고찰이 담긴 사진 시리즈이다. 작가는 영상과 사진에 자연의 연대기 일부를 담아 사회의 구축된 역사를 은유함으로써 정치적이고 사적인 의미 사이에 무위(無爲)한다.

‘상산’이라는 전시명은 산 위의 산이라는 유토피아처럼,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전설의 산을 의미한다. 자연에 대한 장민승의 연구와 이를 담아낸 작품에 기반한 전시 《상산》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어져 온 한반도의 이야기가 단절되며 한라산만 남게 된 남한, 남북으로 끊어진 금강산과 설악산에 대한 전개로 시작된다. 그는 분단 전후 산악 관련 문학과 자연과학에서의 식물 이야기 등을 조사했다. 프로젝트의 일부는 분단을 경험했던 산악인에 대한 개인 서사 및 관련 서적 등이 아카이브로 전시된다. 연구 과정에서 장민승은 우연히 한라산과 남부 지방 인근에 자라는 상산이라는 식물을 알게 되었다. 상산은 항상 산을 지키는(* 상산(常⼭)이라는 식물의 본뜻은 항상 산에 있다는 뜻이지만, 이 식물의 존재를 소개한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의 김완병 학예연구사의 뜻풀이가 본 식물의 의미와 사회적 쓰임이 같다고 생각해 본 프로젝트에는 그렇게 의미를 두기로 했다.) 식물이었다. 사실 상산은 특유의 진한 향기로 오랜 장례 기간 해충으로부터 망자의 부패하는 육체를 지키는 역할을 하며, 망자의 마지막 길에 품위를 지켜주는 식물이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자연의 장엄함과 산악인의 죽음이 한 끗 차이로 있다는 것과 늘 죽은 망자를 기억하는 산악문화에 대해 감명받았으니 산 위의 산과 상산의 식물의 이어지는 것은 상수였다. 본 전시 《상산》은 위와 같은 아카이브 실천을 통해 여러 줄기에서 이어진 하나의 서사이며 장민승의 작업에 프리퀄로 확장된다.

《상산》은 한반도 현대사의 역사적 맥락부터 한 개인의 서사가 있는 장소 속초, 서울, 제주, 경기 4곳에서 선보인다. 장민승의 산 프로젝트의 단초가 된 〈상림〉(2014)을 함께했던 갤러리팩토리가 변모한 팩토리2(서울)에서 10년 만에 다시 소개된다. 서울을 비롯해 한국 전쟁으로 인해 원산의 조선소에서 내려와 남한에 정착하게 된 칠성조선소(속초), 50년 넘게 제주를 찾은 산악인과 장민승의 〈오버데어〉 베이스캠프였던 대동호텔과 비아아트(제주), 유신 시대에 만들어져 유일하게 남은 돌산장인 수락산장(경기)에서 이어진다. 《상산》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한반도에 발 딛고 사는 모두의 이야기이다. 여러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를 마주하며 이곳들이 각자의 피난처나 사원의 장소가 되길 기도한다. 본 전시는 마치 등산과 같이 그간 걸어온 길과 행적이 남겨지는 수행성 프로젝트와도 같다. 오늘날 누구에게나 보편적 공감을 얻고 시대적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를 이번 《상산》에 빌어본다.

글: 최주원

장민승 작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