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xhibitions
<세라분다> 이진아 개인전
2021. 10.15 ~ 11.30
이진아는 예술의 언어로 생각하는 데에 능숙하다. 뭔가를 끊임없이 만드는 예술가고,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사소한 것을 변형시키는 표현 형식을 제공한다. 인지 가능한 도구나 장치를 새로운 맥락으로 연결하고, 비율을 바꾸어 재료를 다양화한 작업을 선보인다. 비아아트의 2016년 <스미다> 전시와 2019년 <닿을 수, 닿을 수 없는> 전시에 이은 <세라분다> 전시는 작가의 설치 작업에 대한 예술적 욕망의 실현이다. 오래 전 영국 작가인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 앞에서 느꼈던 설치 작업에 대한 강한 의지는 작가의 실험적 시간과 과정이 지나면서 점차 완성도가 높아지며 발전된 형태로 등장했다.
이진아 작가 정보
이진아의 매체_ 고무와 플라스틱
2020년 5월 밤부 갤러리에서 진행된 <러버랜드 : Rubber Land> 전시에서 고무를 주매체로 썼다. 매력적이었다. 모양과 굵기, 색이 제각각 다른 여러 형태의 고무로 메워진 복합문화공간인 밤부 전시장에서 이진아의 시도가 전해졌다. <닿을 수, 닿을 수 없는> 전시에서도 쓰였던 고무와는 다르게 고무가 단독 매체로 쓰였을 때의 가능성을 탐험하고 탐구하는 형태였다. <러버랜드> 전시를 진행하면서 이진아는 고무의 확장성과 고무로 가득 찬 공간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실험을 구상했다.
작가가 ‘물 속 같다’고 표현하는 비아아트 지하 전시장에서 ‘_ _ _ _ (세라분다), 몸’을 주제로 설치한 고무와 플라스틱의 조형성은 가히 충격적이다. 갓난아이의 기저귀를 고정하는 가느다란 노란 고무줄, 해녀가 물질할 때 쓰는 고무, 호스처럼 단단하고 제법 굵은 고무 등등. 어디에서 이런 것을 구하는지도 신기할 정도의 다양한 고무가 등장한다. 노란 고무의 표면에는 붉은 핏줄이 도는 것처럼 드로잉이 더해진다. 이렇게 붉은 드로잉을 한 고무의 끝을 맞잡아 형태를 만들면서 붉은 테이프로 붙들어 맺다. 조형성을 지닌 고무는 전시장 천장과 연결되거나, 플라스틱 바구니나 나무틀에 고정하여 매달거나 바닥에 놓아둔다. 마치 개개인의 몸처럼. 서로 다른 DNA와 성장 배경과 경험이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육체를 마주하듯 띄엄띄엄 존재한다. 우리 몸은 밖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간다. 작가가 섭생을 통해 경험한 신체의 변화와 이에 따른 감정의 변화는 고무와 플라스틱 이 두 매체의 결합과 닿아 있다. 고무는 가상의 스킨을 은유하며, 플라스틱 바구니는 견고하지만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 새어나가는 모습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의 균형을 육체와 감정, 고무와 플라스틱이라는 매체로 답하려 한다. 이진아는 자신이 선택한 매체를 탐험하고 이 매체 특유의 언어로 지각하고 관찰하고 질문하고 있다.
죽이는 도구, 살리는 도구
<세라분다> 전시의 다른 영역은 ‘_ _ _ _ (세라분다), 도구’이다. 비아아트 1층 전시 공간에 뭔가 건지는 도구를 손뜨개로 감싼 작업들이 전시장 바닥에 가득 놓여있다. 국내의 여러 시장을 다니면서 수집한 도구들인데 주로 바다 생물을 잡거나 건지는 도구이다. 해산물을 잡는 즉 죽이는 도구지만, 해산물을 먹어 사는 다른 생명체(인간을 포함한)에게는 살리는 도구라는 맥락을 짚는다.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관점에 따라 또는 필요와 요구에 맞게 그 응답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스미다> 전시에서도 작가는 수집한 여러 사물(물건)을 손뜨개로 감싼 작업을 선보였다. 이때의 손뜨개 방식은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게 꼼꼼히 감쌌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헐렁한 손뜨개 방식으로 감싼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해녀의 물신도 예전에는 붉은 털실로 감쌌으나, 푸른 물신 자체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물신 6켤레가 가지런히 한쪽을 향해 서있고 이 전체를 그물같이 짠 손뜨개가 감싸고 있다. 물진 나간 해녀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이런 방식으로 이진아는 도구에 온기를 주고 있다. 건지는 도구, 살리는 도구로 위로의 감정을 전하고 있다.
이진아와 제주 섬
이진아의 첫 제주 전시의 화두는 섬이었다. 섬을 여행하는 것을 극도로 멀리했는데, 어느 날 섬에 다가가서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제주 섬에서 전시를 계획하게 되었다. 작가 선친의 고향인 제주를 예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친인척이 사는 공간으로 인식하다가, 색다른 제주의 오일장을 다니고, 제주의 문화, 역사를 알게 되면서 깊이 있게 제주 섬을 자각하고 이를 시각화하기에 이른다. 5년 넘게 오일장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갈색 바구니는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물건임을 알게 된다. 비아아트 쇼윈도우의 위아래 전체 벽면을 연필로 여러 둥근 형태의 드로잉으로 채우고 그 위에 제주 갈색 바구니를 마치 콜라쥬 하듯 핀으로 고정하여 붙인다. 갈색 바구니 중간중간 노란 고무줄을 늘여 뜨려 입체감 구현하고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제주 섬을 상징한 ‘_ _ _ _ (세라분다), 땅’ 설치물은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 상추 바구니’ 하고 알아차릴 사소한 소재로 새로운 표현을 보여준다. 이진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주체인 예술의 주인임을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사회에 가치 있는 사고 방식을 제안하고 새로운 예술 표현을 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예술가를 통해 예술은 변화와 변신에 관하 것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사소한 매체로 변신하는 예술의 재미를 기대하게 한다.
이진아는 매체 특유의 언어로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질문과 응답을 주고 받는 예술적 즐거움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세라분다’는 제주어로 ‘모르는 사이에 액체와 같은 것이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예술은 세상과 문화를 탐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메체를 탐험하고, 자기 자신을 탐험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매체 특유의 언어로 지각, 관찰, 이해, 감정적, 정신적 상태를 소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술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니면 답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술은 재미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예술은 개인적인 필요와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질문과 응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