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Exhibitions
<버섯의 건축> 박선민, <Architecture of Mushrooms> Park Sunmin
2018. 8.22-10.21
미시-시간-거시
박선민 <버섯의건축> 전시에 붙여
미시를 면밀히 잘 포착하는 작가의 눈을 관람객이 빌리는 것의 미덕은, 작가가 대상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아온 것들을 따라가며 작가의 눈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전체의 주요한 부분이나 정수가 되는 것이든 심지어 왜곡이라 할지라도, 그만의 선택을 통해 나의 해진 눈이 아닌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모이고 떠받쳐 만들어낸 거시의 세계는 미시의 것들이 그들 안에서도 서로의 손과 어깨를 맞잡고 적응과 시행착오를 시간이라는 축을 거쳤기에 가능한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오늘날 전세계가 통용하는 정확과 기준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반박 불가한 절대적인 수치라는 것에 의심이 없고, 또 그런 것을 의심할 만큼 삶의 여유도 없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을까? 바로 가깝게, 강아지나 고양이의1년은 사람의7년과 같다고 하며, 좀 멀리 거슬러 가보면 고대 그리스인은 시간을 오늘날과 같은 일정 속도와 방향으로 흐르는 크로노스( χρόνος)와 주관적인 의미의 카이로스(καιρός, 기회, 영원한 현재)로 나누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다시 미시와 거시로 돌아와, 우리는 거시가 되기까지의 선적인 크로노스 속 수많은 카이로스의 순간(점)을 유추해볼 수 있고, 이들을 작가는 자신만의 눈으로 들추어 해독해 나간다. 해독은 선 위의 점들을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소환해서 의미를 새겼다가 지워내고, 렌즈의 초점을 이리저리 바꾸어보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선적이든 점적이든 시간이 없다면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며, 여러 변인을 서로 비교대조하며 다양한 해석이나 해법을 펼쳐놓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여간 것은 자연계에서는 삶과 죽음의 공존으로, 인간계(도시)에서는 건축과 폐허로 자취를 남긴다. 그러고보면 그 사이의 인간은 오직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관찰하고 저마다의 해독을 유희하는 매우 축복받은 생명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분명 과정은 지독하게 치열하지만.
박선민 작가 정보